여행업은 콘텐츠 산업이 될 수 있을까?
(부제: 그렇게 변한다면 좀 더 의미 있는 산업이 되지 않을까? 커머스 중심에서 콘텐츠 중심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의 여행업은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오랫동안 단순히 일정표를 엮어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커머스(유통) 산업의 구조에 머물러 왔습니다. 그러나, 시장의 트렌드 변화로 인해 여행업이 콘텐츠 산업으로 발전해 나간다면 더 의미 있는 산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재 여행상품 제작구조와 여행업의 한계
현재 여행업은 여행상품을 개발하는 창의성과 노력에 대한 보상을 얻을 수 없는 구조로 인해, 창의적인 여행상품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상품은 천편일률적이며 차별화가 부족합니다.
이러한 한계는 여행업이 여러 원천을 묶어서 유통하는 단순한 중개 역할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유통 플레이어(플랫폼, OTA, 여행사)와 원천 공급자(항공사, 호텔 등)들은 유통에 따른 수익을 획득할 수 있으나, 일정을 엮어서 만든 여행상품은 독창적인 콘텐츠로서 의미를 가지기 어려워 차별적인 가격을 책정하기 힘들고, 설혹 차별화된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시장에서 쉽게 복제될 수 있어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여행상품이 제작되고 유통되는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우리가 여행가는 목적지에 있는 랜드사가 여행상품 요소들의(호텔, 차량, 식사, 현지투어등) 원가를 조합하여 기본적인 여행 상품을 만듭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여행사는 랜드사가 만든 상품을 웹사이트, 제휴채널, 대리점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노출하고, 상담을 통해 판매하며 유통(Retail) 수수료를 받습니다. 랜드사로부터 지상비 견적을 받아 여행사가 직접 소싱한 단체 항공권을 결합하여 상품을 만들거나, 랜드사로부터 항공까지 모두 포함된 상품을 받아서 판매만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 구조에서는 차량, 현지투어, 식사, 호텔등 각 여행요소의 공급자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나 내용의 작은 차이만 존재하고, 요소가 결합된 여행상품 자체로는 특별한 차별성이 없기 때문에 창의적인 여행 경험을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상품의 가격 경쟁력과 유통 능력이 성공의 핵심 요소가 되어 왔습니다. 여기서 투어 가이드와 같이 여행 일정동안 관여하는 인력들은 일정을 안내하고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칩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여행객들은 단순한 이동과 숙박을 넘어 더 풍부하고 의미 있는 개인화된 경험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개개인의 여행객의 취향에 맞는 고품질의 콘텐츠 제공 요구가 증가되고 있어, 여행업이 콘텐츠 산업화 되어가는 흐름이 생겨날 수 있다고 기대가 됩니다.

콘텐츠 산업으로서 여행업이 필요하게 된 이유
아래의 이유들로 인해 여행업이 과거에 해오던 방식과 같은 단순한 커머스를 넘어 콘텐츠 산업으로 진화할 필요성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첫째, 소비자 니즈의 변화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여행객들은 단순한 이동과 숙박을 넘어 더 풍부하고 의미 있는 경험을 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점점 더 개인화된 경험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행업이 단순 상품 판매를 넘어 고품질의 경험 콘텐츠를 세분화하여 여행객별로 제공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둘째, 여행업은 타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콘텐츠 산업화를 통해 자체 브랜드와 IP를 개발함으로써 수익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셋째,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여행 정보의 접근성이 높아졌습니다. 이에 따라 여행객들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스스로 여행을 기획하고 수행하게 되면서, 일정과 요소를 엮은 여행상품을 유통하는 여행사들의 필요성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개인도 만들 수 있는 일상적인 여행이 아닌, 독특하고 의미있는 경험의 연출을 원하는 여행객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콘텐츠 산업의 구조 비교
여행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 하기 전에, 참조할 만한 다른 콘텐츠 산업의 구조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 음악 산업은 음악 기획사와 음악 유통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음악 기획사는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음악을 기획/제작하며, 음원을 소유합니다. 음악 유통사는 이를 음악 플랫폼이나 음반 판매점에 유통하고, 수수료를 제한 나머지를 기획사에 지급합니다.

두번째, 방송 산업에서는 배우, PD, 작가가 레이블을 통해 혹은 스튜디오와 직접 계약하여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최종적으로 방송국이나 OTT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가 유통됩니다. 스튜디오는 레이블에 제작비를 투자하거나 자체 투자를 통해 드라마를 제작하고, IP를 보유하거나 방영권을 판매합니다.

세번째, 영화 산업은 제작사, 투자사, 배급사, 상영관으로 구성됩니다. 제작사는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투자사는 제작사에 영화 제작에 필요한 자금을 투자하고, 이익이 발생하는 경우 수익을 얻게 됩니다. 배급사는 영화의 예산과 손익분기점을 계산하고 상영관 수를 확보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넷째, 게임 산업에서는 개발사, 퍼블리셔, 플랫폼 사업자가 주요 플레이어입니다. 퍼블리셔는 비즈니스 모델 수립, 판매 및 마케팅, 서비스 운영을 담당하며,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여행산업은 상기 콘텐츠 산업들과 달리, 소수의 인건비를 투자해서 일정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낮은 초기 투자비용이 들어가고, 콘텐츠로서 얻을 수 있는 추가이익은 전혀 보상받을 수 없는 구조입니다. 모든 보상은 중개(Brokerage)를 통한 유통 수익일 뿐이기 때문에 경험으로서 여행상품을 만들 유인이 없는 것입니다.
콘텐츠 산업으로서 새로운 여행업의 구조
여행업이 콘텐츠 산업화 되어 간다면 아래와 같은 player들이 나타나면서 새로운 산업구조가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먼저, 새로운 여행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player는 트래블 스튜디오(Travel Studio)입니다. 여행 기획자(=트래블 디자이너, Travel Designer)의 아이디어를 실제 여행 기간 동안의 경험 콘텐츠로 제작하고 발전시킵니다. 여행 경험 전체를 하나의 주제를 가진 통합된 콘텐츠로 인식하며, 항공, 숙박, 교통, 방문지 등 개별 여행 요소들을 전체 여행 경험과 일관된 관점에서 선택하고 구성합니다. 창의성이 핵심 요인인 조직으로, 제작된 여행 경험 콘텐츠의 저작권을 관리합니다. 음악산업의 기획사, 방송에서의 레이블 혹은 스튜디오, 영화산업의 제작사, 게임산업의 개발사와 일맥상통 합니다.

다음으로, 작가 혹은 여행기획자에 해당하는 트래블 디자이너(Travel Designer)가 있습니다. 이들은 트래블 스튜디오(Travel Studio)에 소속되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여행 경험 콘텐츠를 개발하고 해당 저작권을 단독으로 혹은 트래블 스튜디오와 함께 소유하게 됩니다.
제작된 여행 경험 콘텐츠는 실제 판매가 가능한 여행상품으로 구현하는 트래블 퍼블리셔(Travel Publisher)가 필요합니다. 트래블 퍼블리셔는 트래블 스튜디오나 트래블 디자이너에게 자금을 투자하기도 하여 더 좋은 여행 경험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 하고, 트래블 스튜디오의 콘텐츠를 판매 될 수 있는 여행 상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공급하게 됩니다. 그렇게 여행 경험 콘텐츠를 수익화 하여, 트래블 스튜디오나 디자이너에게 배분하는 구조의 핵심 역할을 담당합니다. 영화산업의 투자사, 게임산업의 퍼블리셔등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행 상품을 여러 플랫폼 및 채널에 공급하고 소비자 상담과 예약 처리를 담당하는 트래블 디스트리뷰터(Travel Distributor)가 있습니다.
이러한 콘텐츠 기반 여행업 구조는 창작자들에게 보상을 제공하게 됨으로써 창의적인 여행 상품이 시장에 공급될 수 있게 하여 다양성을 증대시킵니다. 이는 여행 경험 품질의 향상으로 이어져 보다 많은 여행객들의 만족도가 향상될 수 있습니다.
콘텐츠 산업화된 여행업의 예상 발전 양상
아직까지 시장에서 트래블 스튜디오(Travel Studio)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기존 여행사들과는 달리 여행 경험 콘텐츠를 만드는 트래블 스튜디오라고 볼 수도 있는 여행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퇴사준비생의 도쿄'라는 도서를 출판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여행상품을 판매하는 '트래블코드(TravelCode)'나 다양한 전문가들을 가이드 혹은 인솔자로 활용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하는 딥다이브 투어(Deep dive Tour)를 운영하는 '가이드라이브(GuideLive)'등을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여행 경험 콘텐츠의 제작, 상품화, 유통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산업이 조금더 발전하게 되면, 트래블 디자이너(Travel Designer)가 프리랜서 혹은 정규직원으로 트래블 스튜디오(Travel Studio)와 협업 하면서 여행 경험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들의 활동을 위한 투자자들이 있다면 더 빠르게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트래블 스튜디오나 디자이너 분야가 활발해지기 시작하면 트래블 퍼블리셔(Travel Publisher)가 출연하고, 초기에는 플랫폼 및 여러 채널에 유통하는 역할까지 함께 겸하면서 창작자에게 보상을 제공하기 시작할 것으로 보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산업이 충분히 성숙하게 되면, 트래블 디스트리뷰터(Travel Distributor)의 역할이 세분화 되어 나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아랍에미레이트의 '달마(Dharma)'라는 스타트업은 넷플릭스 인기시리즈의 하나인 '에밀리 파리에 가다(Emily in Paris)'의 콘텐츠를 상품화하여 판매하고, 다양한 여행 경험 콘텐츠를 가진 전문가를 활용하여 여행상품을 개발/유통하고 있습니다. 이는 트래블 퍼블리셔(Travel Publisher)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여행업의 콘텐츠 산업화를 위한 생각해볼 수 있는 지원 정책
여행업이 콘텐츠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기 위해서 공공분야에서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을 아이디어 차원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여행상품이 가진 여행 경험 전체를 하나의 저작물로 인정하는 법적 기반 마련을 위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여행상품이 가진 콘텐츠 요소를 등록하고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둘째, 여행상품을 만들어 내는 제작사인 트래블 스튜디오(Travel Studio) 설립을 위한 초기 자금 지원이나 세제 혜택 제공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또한 트래블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콘텐츠를 상품화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자와 연계할 수 있게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초기 트래블 스튜디오(Travel Studio)의 성공사례 개발이 필요합니다.

셋째, 콘텐츠 기반 여행상품 개발 지원 정책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다양한 K-콘텐츠를 연계하여 여행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고, 다양한 한류 콘텐츠 IP를 여행 상품 개발에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지원도 필요합니다.

넷째, 여행상품을 개발하는 트래블 스튜디오(Travel Studio)에 투자하고, 여행상품을 실질적으로 구성하는 트래블 퍼블리셔(Travel Publisher) 지원 정책이 필요합니다. 트래블 스튜디오(Travel Studio)가 여행 경험 콘텐츠를 제작하도록 투자하는 펀드에 공공기관의 출연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행 콘텐츠라는 용어를 여행을 소개하는 콘텐츠가 아닌, 여행 경험 전체를 아우르는 용어로 다시 정의하고, 여행 콘텐츠를 만드는 전문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해 볼 수 있습니다. 상기에서 말한 트래블 디자이너(Travel Designer)에 해당하는 전문 인력이 필요합니다. 여러 플랫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행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트래블 디자이너(Travel Designer)로 육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론
여행업의 콘텐츠 산업화는 단순한 변화가 아닌 중요한 혁신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여행업 구조는 창의적인 여행 상품 개발에 대한 보상이 부족하여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여행객들의 니즈 변화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여행업이 콘텐츠 산업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여행업 구조에서는 트래블 스튜디오(Travel Studio), 트래블 디자이너(Travel Designer), 트래블 퍼블리셔(Travel Publisher), 트래블 디스트리뷰터(Travel Distributor) 등의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등장하여 창의적인 여행 경험 콘텐츠를 개발하고 상품화하며 유통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창작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고, 다양하고 품질 높은 여행 상품을 시장에 공급함으로써 여행객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행업의 콘텐츠 산업화는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장기적으로 여행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위해 중요한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경험과 감동을 제공하는 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더 창의적이고, 더 다양하며, 더 가치 있는 여행의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여행업이 단순한 유통 커머스(commerce)에서 벗어나 콘텐츠(contents) 중심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